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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의 병통(禪病)에 대한 우선적인 이해를.   2014-06-05 (목) 11:41
남국정사   1,747



화두의 병통(禪病)에 대한 우선적인 이해를.

 

어떤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물었습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선사가 대답했다.

"무(無)"


참선 수행자는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하셨는데

조주선사는 어째서 무(무)라 하셨는가를 의심해 들어가 깨닫는 것이 무(無)자

화두의 본령이다. 이 무(無)자 화두를 공부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10가지 병에

대해 알아 보고 이해한다면 다른 여타 화두를 공부해 나가는데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첫째, 있다. 없다로 이해하지 말라(不得作有無會).

이는 무자 화두를 들면서 '개에게 불성이 있다'혹은 '없다'라고 헤아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헤아리는 순간 더 이상 공부에 진전은 없을 것이다.

둘째, 이치로 이해하지 말라(不得作道理會).

이것은 화두에 무슨 현묘한 도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화두를 들때 특별한 이론적 토대에 근거해서 화두를 이러니 저러니 해석하고

분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화두를 들때는 이치로 모색하는 마음길이 끊어져

야 한다. 어떤 도리나 개념의 맛도 사라진 상태가 화두의 본래자리이기 때문이

다.

셋째, 분별의식으로 헤아리거나 알아 맞히려 하지 말라(不得向意根下思量卜度).

참선을 하면서 생각으로 헤아려 해답을 찾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화두를 들면서 여섯가지 분별의식인 육식으로 헤아리고 분별하는 것은

화두공부의 큰 병통이다.

넷째, 눈썹을 움직이거나 눈을 깜박거리는 것에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不得向揚眉瞬目處垜根).

이것은 조사스님들이 보인 격외의 행동, 즉 눈썹을 움직이거나 눈을 깜빡거리는

등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알음알이로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듯 어떤 동작이나 미세한 마음의 움직임도 이쪽 저쪽 어느 한쪽으로

확정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이것인가 하면 저것이고 저것인가 하면 이것이다.

이렇게 화두를 포착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빠져 나가고 없다.

이것이 화두의 살아 있는 모습이다.

다섯째, 말과 글의 틀로 살림살이를 짓지 말라.(不得向文字上作活計).

화두를 의심해야 한다는 말에 집착하여 화두에 담긴 문자상의 관념을 요모조모

분별하면서 생긴 병통을 말한다. 선지식이 준 화두를 의심해야 한다고 했는데,

화두의 언구에 사로 잡혀 말과 문자상에서 이리저리 분별하거나 헤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섯째, 아무 일없는 속에 빠져 있지 말라(不得颺在無事甲裏).

특정한 의미나 도리로 알려고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이러한 데서

마음을 쓰는 것보다는 아무일도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라고 해서 쉬고 쉬어 일없는 적적하고 고요한 곳에서 화두를 들지 않고

우두커니 앉아 있다면 이것도 병통이다. 화두도 들지 않고 일상적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오로지 고요한 경계에 빠지면 안된다는 뜻이다.

일곱째, 화두를 일으키는 곳을 향하여 알려고 하지 말라(不得向擧起處承當).

화두에 대한 의정을 간절히 일으키지 않고 참구하는 화두를 단지 의식으로

알려하는 병통에 대한 지적이다. 곧 의정은 일으키지 않고 화두를 들어 알려고

하는 알음알이를 말한다.

여덟째, 문자를 끌어와 증거삼지 말라(不得向文字中引證).

경전이나 어록등의 문자를 끌어들여 입증할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전이나 어록등을 끌어들여 화두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고 해석하거나

자기 주장을 펴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이다

아홉째, 유무를 초월한 참된 무가 있다는 생각을 짓지 말라(不得作眞會).

있다. 없다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참으로 없는 무인 진무(眞無)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무가 실체로서 존재하거나 상대적인 유무를

초월한 무가 있다는 관념을 비판하는 말이다.

열째, 마음을 가지고 깨달음을 기다리지 말라(不得將心待悟).

이것은 알음알이를 가지고 개달음을 기다리지 말라는 뜻이다.

의식적으로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 있어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의식적으로 깨달음을 기다리는 것을 대오선(待悟禪)이라고 한다.

의식적으로 깨달음을 기다린다면 이것은 스스로가 본래 부처임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또한 의식적으로 깨달음을 기다리기 때문에 그런 알음알이를 갖고 있는

마음이 도에 나아가는데 장애를 준다. 이렇게 스스로 미혹한 존재로 보고

깨달음을 헤아리면서 기다리면 그것은 미혹을 가져다가 깨달음을 구하는 것과

같으므로 설령 헤아릴 수 없는 겁동안 수행하더라도 결코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이상 열가지 병통은 말길이 끊어 지고 생각 길이 끊어진 곳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데서 기인한다. 말길과 생각길이 끊어진 곳에서 순일하게 화두를 지어

은산철벽을 투과하여 본분자리에 계합하게 되면 활달자재한 대장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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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드는 이를 위하여. 
삶의 무상함과 발심.